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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 열다섯 번째 개인전
2016. 10. 6 (Thu) - 10. 30 (Sun)

休 II 117x91cm 캔버스에 복합재료 2016
STATEMENT

새 스키를 샀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젠 정말 바꿔야 하는 게 아닌 가 생각하던 스키였다. 하지만 언제 못 타게 될지 모르는 나이인데 일 이 만 원짜리도 아니고, 뭘 새로 사느냐고 마냥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질렀다! 올 해가 내 마지막 시즌이라 해도 지금이 가장 소중한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80세가 되신 이모님께서는 나를 보실 때마다 ‘내가 네 나이라면.....’하시며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으신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삼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이모님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던 때에도 똑 같은 느낌으로 처연하게 똑 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10년 후, 20년 후, 아쉬워만 하면서 살면 안 되겠다고. 내 오래된 버킷리스트의 윗자리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었다. 늘 꿈만 꾸었는데 어느 날 순례길의 일부, 150킬로미터 정도 걷는 여행상품을 발견했다! 눈이 번쩍 했다. 그래, 10년 후 후회하지 말자! 앞 뒤 가릴 것 없이 당장 예약을 했다. 패키지여행은 거의 다니지 않지만 800킬로미터가 넘는 전 코스를 걸을 시간도 체력도 없던 내게 참 고마운 상품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훈련에 매진했다. 일부라고는 해도 매일 20킬로미터씩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출발 일주일 전, 병원에 갔다. 십 수 년 간 매 년 받던 검진이라 별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한 바퀴 돌고 오빠의 오랜 친구인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잠시 모니터를 들여다보시더니 장기 모형을 끌어당겨 내 앞에 놓으셨다. (응? 이런 건 처음인데? 뭐지?) 그 때부터 뭐라 하셨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멍~ 했었던 듯. 결론은, 당장 수술합시다. 그 뒤는 병원 시스템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예약 담당 간호사는 일주일 후 날짜로 입원과 수술 예약을 잡아 주었다. 머릿속이 마구 엉킨 듯 했다. 잠깐 생각해 보겠다고 대합실로 나왔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공중보건의로 지방에 내려가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병원에 왔는데... 수술해야 한대.’ 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괜찮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키고는 자기가 좀 알아보겠노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참 철이 없기도 하지, 조금 진정이 되니 산티아고 순례길이 슬슬 떠올랐다. 걱정하시지 말고 수술만 하면 될 거라면서도 어두운 음성을 감추지 못하는 아들에게 여행 다녀와서 수술하면 안 되는 거냐고 묻고 말았다. 이 대책 없는 엄마를 어쩌면 좋아! 15% 위약금을 물고, 여행을 취소하고, 스페인에 가 있어야 했을 날에 병원 침대에 누웠다. 오십이 되었을 때, 이제부터라도 미적거리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이 살아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었다. 나만 마음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단단히 마음먹어도 안 되는 게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게 따로 있고, 그 이후는 내가 할 수 없는 거라는 걸, 결국엔 허락해주셔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주어진 걸 잘 누리는 것,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잘 누리는 게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고 안타까워하던 결과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많은 회한과 아쉬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늘 ‘쉼’(休)이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닦달하며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을까? 우선 나 자신이 쉬고, 보는 이들도 잠깐 쉴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아마도 쉼은 내게 끝까지 중요한 주제일 듯하다. 진정한 쉼은 너무나 얻기 힘든 거라서... 멀리 있는 어느 날의 무엇이 아니라 거길 향해 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바로 결과인 거라고 여기기로 맘 먹는다 하더라도, 살아 있다는 건 즉 걱정 근심 고생... 종종 지치고 힘들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苦’는 진리일진대, 정신줄 놓치지 않고 살려면 아직 한참 더 자라야한다. 하지만 성에 찰 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씩은 자라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살아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꼭 무엇 때문에 기쁘고 어떤 결핍이 채워져서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이제껏 살아 보니 그냥저냥 산다는 자체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결과중심과 과정중심의 차이? ‘희’(囍)는 나와 함께 조금씩 자라고 있다. 작업하는 게 재미있고 신난다. ‘희’(囍)를 통해 ‘쉼’(休)에 이르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있다. 보시는 분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이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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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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