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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 열여섯 번째 개인전
2018. 4. 3 (Tue) - 4. 15(Sun)​​​​​​​​​​
이인경

아버지의 세계 162x112cm 캔버스에 한지, 기타 2018
STATEMENT

내 아버지의 세계

기독교인들은 이 제목을 보고 자연스럽게 대문자 "Father"(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것이다. 찬송가 가사에도 있고... 그러나 여기서는 소문자 'f'로 시작하는 내 육신의 아버지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올해 89세이시다. 내가 아는 가장 지성적이고 고집은 세시지만 온유하신 분이고 게다가 외모도 참 잘 생기셨다. 가문의 자존심이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지성이 무디어져가고 있다. 나쁜 병을 피해가시지 못했다. 아직 초기여서 일상생활에는 크게 불편이 없으시지만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고 큰 슬픔이다... 자신의 학문에 대해 성실하시고 더 없이 양심적이셨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그 엄격한 학문의 분위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얕은 재주를 핑계로 공부에서 도망쳤다. 내 선택을 존중하셨고 간섭을 하시지 않으셨던 아버지셨는데 최근 몇 번 자신의 책, 즉 학문을 물려줄 자손이 없음에 대해 서운함을 표현하셨다. 놀랐고, 죄송했고, 무엇보다 나의 능력 없음이 속상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환갑이 된 지금도 학문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가시지 않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 그 길을 가지 않은 게 내게는 천만다행인 걸 어쩌면 좋으랴...!
아버지의 손길과 열정이 담겨있는 책들 중 거의 유일하게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하신 영인본들을 가져왔다. 조금이라도 서재를 정리해드리겠다는 목적이 우선이어서 작업에 쓰겠다는 건 핑계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작년부터 '매일매일' 시리즈를 시작한 참이라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바빠 또 다른 실험을 해볼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드린 말씀이 있으니 뭐라도 하나 해봐야 했고, 시작했고,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가 내 화면에 서 계셨다. 단정하고 조용하고 구부정한 모습 그대로...
비록 아버지가 바라셨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지만,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세계와 내 나름의 방식으로나마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이다...


이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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