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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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LIFE 공모선정작가전Ⅲ
2019. 8. 13 (Tue) - 8. 18 (Sun)
손지연 이세진 이혜빈 정재은 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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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 현대인의 일상 25.8cmx17.9cm Oil on canva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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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나의 작업은 인간관계가 거쳐 간 후 남은 잔여물에서부터 시작된다. 불쾌한 감정들은 나를 집어삼키고 축적해가며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한계치에 다다라 엉키고 뭉쳐가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가진 채 수많은 드로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들은 곧 ‘제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복합적인 기억을 통해 그림에 등장하였다.
수많은 드로잉 속에서 나체로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현실에서 내가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한 해소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한다. 그녀는 나와 다르게 이상적인 평범함을 추구하기 바랐기에 보통의 존재 같은 흔한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결국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사실은 ‘나’ 자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내 스스로가 성장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지연
현대인들이 사는 세상과 이 속에 놓인 존재와, 시선과, 얼굴을 그려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들을 물리적으로 겹침으로써 마치 영화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작업 속에는 두 장면의 이미지가 공존하게 됩니다.
두 장면은 오버랩 되면서 일종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그리고 서로 이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감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작업에서 보이는 것처럼, 뭐가 뭔지 전혀 모를 때만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어쩌면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너무 많이 알기에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이 너무 많고 복잡한 상황들과 걱정들이 많이 있어서, 그러므로 오버랩 된 일상의 풍경을 보았을 때, 아이가 되었다가 또 어른이 되었다가 반복하는 두 자리의 괴리를 실감하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 존재의 영혼이 깃드는 장소이고,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바로 그 사람만의 고유성을 포착해내어 현대인들을 그려 나아가고 있습니다.
독특한 실험적 화면기획에서 비롯되어지는 강력한 메시지와 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전달에 정서적인 울림을 강하게 주는 까닭이 제 작업에서 보여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세진
‘삶’이란 급변하는 사회와 알 수 없는 관계의 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복잡한 듯 보이지만 결국 연결과 연속성을 거쳐 변화와 성숙한 삶을 도야하는 곳일 테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하는 즉, ‘삶’=‘현실’속에 지나친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관계’와 ‘감정’처럼, 형태가 아니한 것들의 존재가치를 모른 채 흘러간다.
지난 날, 예민한 시기에 ‘나’를 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타인에 대한 의식과 잦은 배려로 만들어진 껍데기였을까. 자연스레 시선은 ‘혼자’라는 초점에 기울였고 타인과 교류, 관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에 당연했고 멀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해 깊게 마음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런 불연속성과 불안 속에서도 ‘나’ 그리고 ‘우리’들은 결국 각각의 이야기로 가동되면서 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실 어느 하나 명쾌한 답은 없어도 관계와 교류의 과정에서 발생한 불순물부터 희망적인 내면을 담고자하는 나의 미흡한 감정처리와 시선이 닿기를 바란다.
이혜빈
Productive Action (2nd Edition, 2019)
1CH Video, 1’30” loop
나의 작업은 당연하게도 세상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관찰하는 세상은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듯 보이는 일상의 사건들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행위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아이러니 혹은 부조리이다. 사실은 그렇게 의도에서 빗나간 결과들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의 일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어쩌면 부조리와 비논리가 이 세계와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일상에서 발견되는 비논리적 사물과 행위들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왔다. Productive Action (2019)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거칠게 촬영된 짧은 영상 속의 인물은 식사 중이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가 반복되는 동안 이미지가 부서지고 결국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작업에서 인간의 행위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행위 자체를 위한 필수 전제인 생존을 위한 행위인 음식의 섭취를 대상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렇게 존재 자체와도 같은 먹는 행위에서 조차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발생한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음식을 먹지만, 소화의 과정에서 육체는 노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파괴된다. 이 같은 의도에 대한 결과의 배반은 비단 먹는 행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모든 행위들을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이 역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한 과정은 영상을 만드는 형식에서 더 잘 드러난다. 최종적으로 부서져 사라지는 이미지와 사운드는 최초로 촬영된 영상을 재생하고, 재생되는 화면을 다시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계속적이고도 반복적인 생산행위가 결국은 점진적 파괴의 과정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재은
‘표상‘이란 심리학에서, 대상이 사라져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잔상으로, 오감을 통해 인식된 실상이 경험에 의한 의식작용을 거쳐 재생성된 이미지이다. 표상은 이 시대에 삶의 전 영역에서 간접 체험이 아닌 직접 경험만으로 일정 부분을 지배하며, 특히 대부분이 시각적 이미지로 기억되어 작용한다. 이것은 또한 간접 체험의 이미지들과 비교되어 차별화되기도, 중첩되기도, 때로는 실상과는 다른 형태로 왜곡되어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실상을 보면서도 과거에 대한 회상과 마음의 표상이 오버랩되어 혼란스럽거나 오히려 환상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때로는 역으로 표상이 균열되기도 한다. 이 작업은 이렇게 표상이 생성될 때 생기는 자국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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